외교와 안보



 

[기고]김일성의 군사적 기습과 김정은의 외교적 역습

최고관리자 0 323 04.30 13:06


  • 장성민 전 의원·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30/2018043000804.html 

 

입력 : 2018.04.30 10:06 | 수정 : 2018.04.30 11:43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한마디로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면적 무력 충돌의 일보직전까지 치닫던 두 나라 정상간의 만남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상회담의 준비, 진행, 결과 등 일련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비핵화’문제에 대한 담판도, 이견도, 심지어 사소한 문구조정에 따른 진통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신 면밀하게 기획되고 철저하게 준비된 각본에 따라 감성을 자극하고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연출이 이루어졌다. 이 한편의 드라마는 비무장 판문점 평화의집이라는 장소 선택, 회담장 세팅과 기념식수, 두 정상의 산책 대화, 공동 선언문 발표, 리설주의 깜짝 등장, 메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 만찬, 평창올림픽을 연상시키는 환송행사 등 내용보다는 형식과 이미지 연출에 집중한 흔적이 역력했다. 정상회담 장소인 긴장의 땅 판문점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처럼 위기감과 긴장감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서로 다른 목표와 전략을 가진 두 나라 정상 간의 만남이 아니라, 마치 한 국가처럼 공통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 전 세계를 상대로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는 듯한 강한 인상을 풍겼다.

이들 두 정상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며 연출한 이번 회담의 목표와 의도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토록 남북한 두 지도자로 하여금 찰떡공조를 가능하게 했을까?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키워드는 평화와 번영이다.

북한이 회담 장소로 판문점 ‘평화의 집’을 선택한 것도 그렇고, 정상회담 기념비에 ‘평화와 번영’이란 말을 새긴 것도 그렇다. 북한이 이번 회담의 키워드로 ‘평화와 번영’을 선택한 것은 철저히 트럼프대통령을 의식해서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군사압박과 혹독한 경제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한 김정은의 선제적 대미 ‘예방외교(Preventive Diplomacy)’인 것이다. 김정은 자신을 평화와 대화를 추구하는 인물로 설정한 것은 역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전쟁과 대결의 이미지로 만들어 놓으려는 복선이 깔려 있다. 한마디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임했던 김정은의 전략은 철저하게 대미전략에 입각한 ‘북한판 평화와 번영’ 전략인 것이다. 북한 김정은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낸 것은 트럼프의 ‘최대압박’ 전략과 선제타격론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격에 대한 공포와 중국까지 동참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는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고, 김정은으로 하여금 기존의 핵만 갖고는 체제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면서 들고 나온 새로운 전략적 목표가 바로 ‘북한판 평화와 번영’인 것이다. 여기서 ‘평화’란 미국의 무력공격 가능성을 없애는 목표달성의 결과물이고, ‘번영’은 ‘대북제재 해체’와 ‘대규모 경제 원조’를 발판으로 한 경제재건을 의미한다.

김정은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의 ‘평화프레임’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3대 ‘세습 독재자’가 순식간에 ‘노련한 외교가’로 등장하여 일약 한반도 ‘평화의 사도’의 이미지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어 모은 뒤, 판문점 평화의집이라는 장소 선택에서부터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 추진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면서 트럼프의 대북 선제공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평화 프레임’을 확산시키는 치밀한 전략을 준비했던 것이다. 이는 현 상황에서 핵무력 완성보다 ‘비핵공갈쇼’를 통한 ‘북한판 평화’의 달성이 자신들 체제유지에 더욱 긴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번영’은 ‘평화’가 보장된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체제 생존의 조건이자 ‘비핵공갈쇼’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이다. 핵무력 완성 이후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경제건설의 추진’은 강력한 대북제재로 피폐해진 경제를 재건하고 ‘병진노선’을 완성시키기 위한 당연한 귀결이기도하다.

김정은은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북미회담을 향한 자신의 무게를 높였고, 미국의 입장을 약화시키려 노력했으며, 다가올 북미회담이 실패로 끝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그 다음에 뽑아들 군사적 공격 카드와 경제적 압박 카드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평화와 번영’의 식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선택한 판문점은 ‘정전협정’을 맺었던 지역이지만, 북한주민들에게는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에서 패한 굴복의 항복장소로 인식된 곳이다. 현재 이곳은 유엔군 사령부의 관할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왜 이곳을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설정했는지에 대한 그 전략적 배경을 간과할 수 없다.

지금 김정은은 ‘북한판 평화와 번영’을 보장받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비핵공갈쇼’를 펼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존 입장에서 이번 판문점 공동선언문에 ‘완전한’이라는 수식어를 추가한 것은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을 겨냥한 포석이다. 미국에 대해서 협상의 기대감을 높이는 목적임과 동시에 북한 전역에 산재된 핵시설의 완벽한 사찰과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인 것이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타임라인과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고, 올해 안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고 밝힌 것은 북한의 핵폐기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제조건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대목이다. 하지만 남북정상이 다시 만나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맺게 되면 이것만으로도 주한미군은 더 이상 주둔할 수 없는 환경이 갖춰진다는 것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북한은 애써 미리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추진하기로 합의한 ‘평화협정’이 곧 한국에서 미국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공식화했던 유엔군사령부의 존립 근거를 자동적으로 없앨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단계적인 군축 실현은 자연스럽게 주한미군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상황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왜 이러한 북한의 전략과 그 의도에 맞춰 치밀하게 기획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마치 한 몸처럼 북한과 찰떡궁합을 보여준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현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과거 자주와 반미를 부르짖으며 민족대단결을 주장하던 경험과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들은 국가와 국익보다 민족을 우선시하는 감상적 민족주의와 이미 패망한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동경의 흔적이 이들의 사상적 기저에 깊게 깔려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예컨대, 이번 공동선언문에서 민족, 자주의 원칙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이 우연의 소산일까? 또한 지난 2007년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합의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화가 이번 합의에 또다시 포함되었다. 이는 민족공조라는 이름하에 우리 국토를 포기하고 국민과 국익을 저버리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북한은 이러한 이들의 성향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한국을 자신들의 핵무력을 대체해서 미국의 전쟁위협을 막아줄 방어기제로 활용하고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현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이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가 국내 정치에서 불리한 이슈를 가리고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좋은 호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이를 내치에 활용코자 하는 그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길고 호화스런 의전행사였던 반면에 회담의 실질적인 내용은 없었다. 한국의 안보와 생존을 위한 비핵화 협의는 실질적 논의를 하지 못했다. 무엇을 위한 정상회담이었나? 비핵화가 없는 종전협정과 평화조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협의도 없이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북한의 국가전략인 핵과 경제발전의 병진을 적극 도와주는 것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북한은 지금 한국을 미국의 대북 군사 공격과 경제 제재를 거둬 내려는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동맹국인 미국과 깊은 논의를 하고 협의하는 모습인가 아니면 북한과 협력하여 미국의 대북 압박을 견제하는 모습인가?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는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현격하게 약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두 지도자가 북한의 핵문제를 어떻게 다뤄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회담이 아니라 미국을 어떻게 다뤄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회담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판문점 평화의 집을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이런 속셈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 같다. 즉각 무시했다.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지금 동맹국 미국의 눈에 한국 정부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지금 김정은의 눈에 한국 정부는 어떤 존재로 비춰지고 있을까? 판문점 비무장 지대의 평화의 집이라는 무대세트부터 평화와 번영 그리고 평화조약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평화프레임웍’을 창안한 핵심 세력은 한국일까 북한일까? 아무런 논란의 여지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만장일치의 정상회담은 누구의 사전 각본이며 시나리오일까? 이번 정상회담은 국제 외교무대에 누구를 띄우기 위한 회담이었을까?

끝으로 이번회담을 통해 한국정부는 무엇을 얻었는가? 비핵화 없는 평화협상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 올 수 있을까? 그런 봄을 우리는 진정한 봄으로 기대하는가?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34살의 젊은 김정은은 그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처럼 다시 한 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흔들었다. 그것은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군사적 남침을 기습적으로 감행하여 세상을 흔들었던 것처럼, 그의 손자 김정은 역시 치밀하게 준비한 시나리오를 통해 기습적인 정상외교를 통해 또 한 번 세계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이제 한국은 동맹국 미국의 핵우산을 벗어 던지고 북한의 핵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비극적 운명을 맞고 있는가? 우리 미래를 핵인질로 잡을 수 있는 그 위험한 핵무기를 덮어 놓고 정상회담이란 파티쇼를 펼치는 이 기막힌 연출은 누구의 작품이며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북한의 즉각적인 비핵화 없이 부른 그 어떤 평화의 노래도 위장이고 위선이며 마침내 화염과 분노를 부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30/20180430008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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