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안보



 

해양국가냐 대륙국가냐

넷짱 0 627 01.0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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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여전히 육지라고만 생각하며 지내온 결과 바다를 멀리해 왔었다. 그러나 대륙국가들과 해양국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특히 이들 국가들이 세계지배를 놓고 경쟁하는 상호 패권관계에 놓여 있는 상황일 경우, 이들 강대국들에 대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우리가 생각 할 수 없을 정도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땅 한반도를 우리민족이 살아온 삶터로서, 고유한 땅의 가치로서의 한반도라는 그 이상의 생각을 갖지 못하고 지내왔을지 모르지만 ,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들은 자국의 국가이익을 팽창하기 위한 전략적 전초기지로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우리 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위 한반도의 땅 주인 보다는 이 땅의 가치를 아는 주변국 부동산 업주들이 땅의 가치를 훨씬 잘 평가하고 있는 상황과 거의 비슷한 입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남북한의 발전 정도를 놓고 우리한반도가 대륙국가로 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해양국가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다면 한반도는 최소한 지금까지는 해양국가의 편에 서 왔었던 것이 국가부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좋은 선택이었음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과거 고구려와 같이 대국을 이뤘다 하더라도 대륙의 질주만으로는 대국을 이룰 수 없었으며 해양을 동시에 견인해 내는 해양력을 동시에 갖췄을 때만이 대국으로 갈수 있었다는 점을 역사 속에서 발견했다. 이는 북한이 대륙국가인 구소련과 중국의 입장에 서 온 결과, 오늘날 국가경제가 거의 파산상태를 맞게 되었다는 점과 반면에 남한은 해양국가인 미국의 편에 서 왔던 결과 오늘날 세계 12위라는 경제규모의 성장을 이뤄 남북한 간의 경제적 격차가 약 15배 정도에 이를 정도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민족은 아직까지도 한반도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해양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륙에 붙어 있다는 점으로 인해 해양의식 보다는 절대적인 대륙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역사상 세계를 지배했던 강대국들이나 제국들을 보게 될 경우 대륙국가들 보다는 해양국가들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누려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모두 해양국가였고, 20세기의 미국 역시 해양국가라는 사실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 해양제국들은 자신들의 상품 시장 개척과 원료 공급지 확보를 위해 치열한 세력팽창을 추구하면서 동양을 침략해 왔는데 이들이 들어온 경로도 대부분 바다를 이용해서였다. 

15세기 말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 시대가 열리면서 서구 해양세력들은 동양을 점령하기 시작했는데, 이 동점(東漸)의 시작은 16세기 초엽 포르투갈인들이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를 점령 하고, 16세기 중엽에 중국의 마카오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을 시작하면서부터 16세기 후반에는 스페인이 그리고 17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네덜란드와 영국인들이 신항로를 따라 동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함으로써 해양국가들의 세력팽창도 순차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이들 해양 국가들이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지정학적 장점이 작용했다고 한다. 첫째, 대륙국가들이 대양을 쉽게 건너와 해양국가들을 공격할 수 없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 둘째, 해양국가들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광활한 바다를 이용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대륙국가들을 쉽게 포위할 수 있는 기동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해양국가들이 대륙국가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인하여 대륙국가들간의 패권 투쟁에 쉽게 말려들지 않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자신들이 지향하는 국가 건립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는 영국의 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이 산업혁명의 근원지로 출발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지정학적인 설명이다. 영국은 유럽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유럽 대륙국가들간의 오랜 전쟁과 투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가 있었고, 그 대신 국가 건설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일본은 태평양에 떠있었기 때문에 외침을 쉽게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항해의 주경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보다는 빨리 개화 개방을 할 수 있었고 이를 곧장 메이지 유신으로 진화시켜 근대 산업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당시 대륙국가와 해양국가들의 패권각축장으로 변해 가는 바람에 일본처럼 외부 문물을 쉽게 받아들여 이를 신흥 산업 국가로의 기초로 삼기가 어려웠다. 1854년 일본은 미국의 메튜 페리 제독의 함포공격을 받고 강제로 개방을 하면서 미국과 미일 조약을 체결하여 개항 국가로 발돋움해 갔다. 그러면서 자신들 보다 앞선 선진 해양문물을 받아 들여 근대국가로 매진하는데 성공한 반면, 당시 조선은 1864년 청년 고종의 즉위와 함께 정치의 실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전제왕권의 수립에 목표를 둔 통치의 지표를 발표하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당시 대원군은 양이와의 강화는 매국이요 망국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서울 종로등에 척화비를 세워 서양과의 전쟁을 강조하였다. 일본이 개혁과 개방의 길을 앞당겨 나갈 때 조선은 그 반대인 쇄국과 고립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이미 조선이 대륙국가 중국에 편속되어 해양국가 미국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 쇄국정책의 보스였던 흥선대원군은 청년 고종을 잡고 섭정을 하면서 서구 오랑캐들을 배척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서구 오랑캐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배척하는데 성공한 조선은 이내 개화기에 서구 선진문물을 놓치게 되어 결국 국가의 주권 보호에 계속된 실패를 안게 되었다. 결국 청년기에 들어선 국왕 고종도 양이와 강화를 주장하는 자는 매국지율로 다스릴 것을 다짐함으로서 마침내 미국 함대를 물리쳤다. 이것이 바로 신미양요인 것이다.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이 이미 서구 세력들과의 문물 교류를 시작하면서 그들의 선진 문화기술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이들 두 주변국들보다 약소국이었던 조선은 계속해서 서양과의 접촉을 일종의 매국으로까지 몰아 부치는 극단의 고립정책을 지향해 나갔다. 그런 결과 조선은 일본, 중국보다도 근대화에 늦었으며 결국 뒤늦은 개화로 우리 보다 한발 앞선 선진문물로 무장한 일본에 또다시 식민 지배를 당하는 치욕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는 당시 대륙국가 중국의 속국이었던 조선이 얼마나 해양국가 세력들에 대해 배타적이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는 부분이다. 당시 조선의 조정에서는 경연(經筵)을 열어 미국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는데 미국의 건국 역사는 짧고 문화는 아직 미개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미국인들은 금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미국에 대한 논의였다. 그리고 미국인들과 강화하게 되면 조선과 조선인은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단정을 내렸고,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해양세력 미국과의 강화는 용납될 수 없으며, 설사 중국이 그것을 종용하여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조선의 조정 생각이었다. 이 부분은 조선인들의 대외인식이 얼마나 일천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미 거함을 만들어 함포사격으로 동양 변방인 일본을 개항 시킨 미국을 놓고서 금수(禽獸)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한 것이나 미국이 미개한 상태에 놓였다고 주장한 부분은 역설적으로 조선이야 말로 주변 정세변화에 아주 무지한 상항이었음을 반증한다. 이는 당시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패권다툼을 빨리 눈치 채고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조선에 조언을 한 중국의 대외인식에 비하면 조선은 바깥 정세에 대해서는 거의 눈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조선은 독자적인 외교전략이나 정책도 그리고 외교적 주권의식 조차도 상당히 결여 되어 있었다. 미국과의 수교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문제를 중국에 일임할 정도라면 조선은 중국을 의식하지 않고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거의 펼치지 못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다. 

대륙국가 중국이 해양국가 미국과의 강화를 종용한다 하더라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부분은 당시 우리나라는 당연히 대륙국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관념 이외에는 해양의식이 전무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결국 나중에 중국의 권유로 조선이 일본, 미국과 수교 관계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대륙국가 중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게 미쳤는지를 알 수 있게 한 부분이다. 당시 서구 열강들의 침략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중국은 마침내 해양세력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여 만일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면 외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이 또다시 조선 문제에 개입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국의 입장에서는 많이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중국 본토의 내란도 정리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의 속국에서 일어난 문제까지 관리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라고 판단하여 조선을 일정한 정도의 중국의 영향력 하에 두면서 조선이 어느 특정 세력의 영향권 하에 복속되는 것을 막고자 미일과 수교를 맺도록 권고했던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해양세력인 미국, 일본과 조선을 균점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은 조선 원로대신 이원유에게 이른바 '밀함'을 보내어 서양 여러 나라와 수교를 권고하게 되었는데(1879), 이는 한반도에서 열강간의 세력균형을 이룩하여 일본이나 러시아의 침략까지도 견제하자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은 한반도가 자신들의 영향권으로부터 빠져 나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에 무력을 행사하거나 일정한 압박을 가하면서 조선의 외교정책을 변경하고자 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과 조선이 일정한 조공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국은 조선에게 조정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보호해 주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조선은 대륙국가 중국의 영향력 하에서 크게 빠져 나오지 못했음을 또한 다음 내용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일단 미국과 수교를 맺어야 한다는 중국의 이런 권고를 무시하고 대신 일본의 침략여부를 파악하기 위하여 1880년 여름에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을 일본으로 파견하게 되는데, 이때 김홍집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주일청국공사 하여장과 참찬관 황준헌 등을 만나게 된다. 당시 황준헌은 김홍집에게 조선은 미국과 수교하여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을 이룩함으로써 러시아의 남하와 침략을 견제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수교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리고 나중에 황준헌은 조선의 외교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국적 사고를 담은 조선외교 지침서인 "조선책략"이란 책을 김홍집에게 건네주는데, 이 책은 조선의 국왕으로 하여금 미국과의 수교가 부득이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만든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결국 조선의 국왕은 북양대신 이홍장으로부터 미국 등 서양 여러 나라와의 수교를 권고 받고 결국 밀사를 이홍장에게 보내어 미국은 물론 서양 여러 나라와도 수교할 뜻이 있음을 통고하였다. 당시 조선은 미국과의 수교문제를 진행함에 있어서 이홍장이 미국과 조약체결시 조선은 중국의 속국임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받아 드렸을 뿐만 아니라 아예 미국과의 협상 전권을 이홍장에게 위임해 버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당시 조선이 미국과 조약을 맺게 된 것도 중국의 권유와 영향력에 의해서였고, 조미 조약 체결 당시 조약문상에 조선이 중국의 속국임을 명문화하자고 요구한 중국의 요구도 그대로 받아 들였는가 하면, 아예 미국과의 조약전권을 중국의 이홍장에게 위임해 버리기까지 하였으니 실로 대륙국가 중국이 얼마나 조선에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는가를 여실히 말해 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중국은 한반도내의 자국의 패권경쟁세력인 러시아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을 끌어들일 생각을 갖고서 조선으로 하여금 미국과 수교를 하도록 권고했던 부분이다. 이는 조선이 일본과 러시아의 영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호해 주고자 중국이 미국을 끌어들일 것을 조선에 권면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속국인 조선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서 미국을 끌어 들여 이를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선과 미국과의 수교를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 조선이 미국과 조ㆍ미조약을 체결하는데는 국왕 고종과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등 일부 소장 관원들이 이홍장과 하여장의 권고를 받아 들여 이루어진 일이나 이는 청국과의 조공체제를 유지하면서 어디까지나 청의 보호를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등 우호적 국가들을 선택하여 수교관계를 맺음으로써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중국의 외교 전략을 조선이 편승한 것이다. 당시 조선은 대륙국가 중국만 쳐다보다가 해양세력들을 무시한 나머지 개화에 늦었고, 그 결과 중국의 영향력이 사라지자 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실패한 나라였다. 대신 중국의 영향이 컸을 때는 중국의 보호 속에서 그럭저럭 국가 유지를 해 올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우리나라가 대륙에 붙어 있다는 대륙의식에만 집착하지 않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해양국가라는 해양 의식을 동시에 아울러 키워 나갔더라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보다 안정된 국가를 유지해 나갈 수가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특히 과거의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바다를 육지의 개념으로 생각하여 바다 영토를 확장시키는 해양 전력을 키워 나갔더라면, 아시아의 새로운 제국으로 발돋음할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해양세력 일본 보다 훨씬 먼저 서구 선진 문물을 받아 들여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는 그런 역사적 우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개화말기의 조선이 대륙 국가인 중국의 속국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여 해양세력 일본에 먹히게 되었다는 이 사실은 우리 한민족으로 하여금 해양으로의 진출을 일깨워주는 웨이컵 콜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대한민국이 대한강국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해 내려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한민족의 국가발전 모델을 창조해 내야 한다. 

필자는 우리의 이상적 국가발전 모델로서 중국의 대륙세력과 일본의 해양세력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해양력과 지상력을 갖고 있었던 광개토대왕의 고구려모델을 꿈꾸고 있다.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영토가 가장 넓었고, 존속기간이 700년이 넘었으며, 무엇보다도 정체성에 충실한 역사를 지닌 성공한 나라였다. 고구려를 경계한 주변국가들이 오죽했으면 고구려를 하구려로 낮춰 불렀겠는가. 고구려는 우리 민족이 추구하고,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목표들을 이미 수천 수백 년전에 적극적으로 실천했으며, 또 실패했던 경험도 갖고 있다. 내가 잊을 수 없는 그 나라 고구려는 반도 사관에 젖어 외세에 의존적이고 내부 갈등이 심한 지금의 우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으며, 남과 북으로 갈라진 그런 분단된 국가도 아니었다. 중국과 북방국가들에게 외세의존적인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으며 당당하고 공격적인 위용을 갖고서 주변국들에게 매우 자주적이었고 능동적인 자세를 취했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절대 우위에 있었던 나라였다. 

또한 우수한 기마문화를 꽃피웠고 민족의 정체성이 아주 뛰어났던 나라였다. 고구려는 이런 점에서 21세기 우리 민족이 추구해야 할 가장 역동적인 국가모델임이 틀림없으며, 광개토대왕 역시 고구려를 그 시대 세계 중심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할 목적으로 다양한 정책들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성공시킨 위대한 정치가였다는 점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대한강국으로 만들어 세계질서의 중심에 이 민족을 올려놓고 싶어 하는 꿈을 꾸는 내 자신의 이상적 정치인의 모델이다.

단지, 광개토대왕과 내 자신이 대륙과 해양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발전과 동북아의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른 점은 광개토대왕은 육지위주의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대륙적인 문명사관을 갖고 있으면서 해양질서를 부차적으로 수용한 반면, 필자는 해양 위주의 질서를 기본 축으로 하면서 대륙질서를 점진적으로 수용해 나간다는 점이다.

한반도는 지금까지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해양세력과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대륙세력 사이에서 어느 일방이 우세한 세력을 확보하면 그 세력에 일방적으로 편속되었던 역사를 갖고 왔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간의 패권다툼이었으며, 남북으로 분단된 냉전의 양극체제도 대륙세력인 구소련과 해양세력인 미국의 패권경쟁의 결과물이었다. 구소련이 붕괴된 지금 한반도는 또 다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간의 패권각축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위섬 영토분쟁, 러시아와 일본의 북방 쿠릴 섬을 둘러싼 영토분쟁을 포함하여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패권다툼이 본격화됨에 따라 한반도는 이제 또 한 세기의 강대국들의 패권각축장으로 변모할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생존의 키는 다름 아닌 외교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대한강국으로 부활할 수 있는 길은 무엇보다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이해관계를 꿰뚫고 이 두 진영의 세력경쟁을 우리의 국익발전을 꾀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으로 이끌어 내는 외교력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잘 조정할 수 있는 외교대국으로 발전시켜 일단 국가의 생존망을 안전하게 구축한 다음,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관점을 포착하고, 이를 역으로 4대강대국들을 상대로 우리의 경제발전을 꽤할 수 있는 지경학적 입장으로 한반도의 포지션을 전환시켜 통상과 투자를 통한 경제강국으로의 발돋움에 박차를 가해 나가는 것이 21세기 뉴한반도 광개토비전이다. 이러한 미래국가전략으로 경제발전의 토대가 튼튼해지면 이와 더불어 성숙된 외교력으로 주변국가들을 잘 관리해 나가면서 남북한 간의 국가통합의 길을 확대해 나가 마침내 통일을 이뤄 내는 행복한 통일국가를 꿈꾸는 것이 뉴한반도 광개토비전인 것이다. 외교대국, 경제강국, 행복한 통일국가를 이뤄내어 고구려를 세계질서의 중심에 놓았던 광개토대왕처럼 한반도를 국제질서의 중심에 우뚝 세워 놓기 위한 국가발전의 비전과 전략이 바로 뉴한반도 광개토비전이다. 가늠할 수 없는 한반도 발전을 위한 나의 꿈과 비전의 끝은 마침내 대한민국이 대한강국으로 비약하여 세계국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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