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


 

개혁으로서의 개헌: 대통령제 민주주의와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

최고관리자 0 566 01.15 19:42

 

월간중앙 "이제 진정한 改憲을 논의할 때다" : 한 386의원의 「4년 重任 정·부통령제」개헌론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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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으로서의 개헌: 대통령제 민주주의와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


장성민


  2000년 12월 국내 모 주간지의 전문가그룹 여론조사에 따르면, 헌법학자들이나 행정학자들, 그리고 정치학자들의 91%가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 중 46%는 4년중임 정부통령제를, 32%는 4년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 전문가들은 13%에 불과했다.

  한국사회는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계기로 이미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진입했다. 그러나 정작 민주주의의 작동규칙이어야 할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14년 전 민주화 초기단계에 권위주의의 유산과 민주화의 결실을 혼합하여 빚어낸 ‘과도기적 대통령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규칙과 게임의 괴리’, 이것이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기대할 수 없게 하는 한국정치의 현주소이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현행 대통령제에서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탈각시키고 온전한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개헌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개헌주체인 정치권에서는 “혹시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과 특히 그러한 여론을 조장하는 일부 反개헌론자들을 의식해 간헐적인 목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대선경쟁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개헌 마지노선은 올해까지이다. 5년을 더 허비하지 않으려면, 지금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이 공론화되어야 한다.

 


1. 한국 개헌사와 ‘개헌 콤플렉스’

 


  1948년 헌법제정 이후 1987년 제9차 개헌에 이르기까지 우리 헌법은 평균 4.5년에 한번 꼴로 개정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개헌의 빈도만이 아니라, 4.19혁명 직후의 제3차, 제4차 개헌과 6월항쟁 직후의 제9차 개헌을 제외하고는 그간의 모든 개헌이 집권자의 입맛에 따라 부당한 절차를 통해 조작되었다는데 있다.

  제헌헌법은 대통령제를 주장한 이승만계열과 의원내각제를 주장한 한민당계열의 정치적 타협에 의해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기형적 대통령제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승만대통령은 한국전쟁 와중의 실정으로 국회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두 차례나 제출하였으나 모두 부결되고 말았다. 이에 권위주의 집권세력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일부 야당의원을 구속하는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킨 가운데 공고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개헌을 단행했는데, 이것이 소위 ‘발췌개헌’으로 불리는 1952년 제1차 개헌이었다.

  1954년 제2차 개헌(‘4사5입 개헌’) 역시 이승만대통령의 집권연장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집권세력은 대통령 중임을 1차로 제한한 규정을 초대대통령에 한해 철폐할 것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상정하였으나, 의결정족수 135.333석에 0.333석이 미달하는 135표를 얻어 부결되었다. 그러자 이틀 후 집권세력은 “국민주권을 산술로 농락하는” 해괴한 ‘4사5입론’을 적용, 의결정족수를 135표로 수정하여 개헌을 선포하였다.

  1962년 제5차 개헌(‘국민투표 개헌’)은 대통령의 3선을 금지하는 규정을 담고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아니라 5.16 쿠데타로 탄생한 초헌법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발의, 공포되었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정당성을 상실한 개헌이었다. 나아가 박정희대통령은 1969년 3선개헌 금지조항을 철폐할 것을 골자로 하는 제6차 개헌(‘3선개헌’)을 단행함으로써 스스로 마련한 제5차 개헌의 합리적 요소마저 제거하고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결사적인 반대에 봉착한 여당은 야당이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일요일 새벽 2시경에 매수된 야당의원들의 동의로 국회별관에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한국 헌정사상 최악의 개헌은 역시 1972년 제7차 개헌(‘유신개헌’)이었다. 박정희대통령은 스스로 헌법을 정지시키고 국회를 해산하는 한편, 국무회의에서 자신이 제안한 개헌안을 통과시킨 후 국민투표로 확정함으로써 사실상 정권교체가 불가능한 유신헌법을 등장시켰다. 유신헌법의 골자는 대통령직선제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선제로 바꾸고,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추천하며, 사법부 인사권까지 장악하는 ‘절대대통령제’였다.

  1980년 제8차 개헌(‘단임제개헌’) 역시 유신개헌에 못지 않은 비민주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국민의 대통령직선제 요구를 무시하고 7년 단임의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마련, 국민투표로 확정지었다. 국회는 이미 해산되어 있었으며, 개헌안은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자의적 기구에 의해 발의되었다는 점에서 그 불법성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통과된 제5차 개헌이나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유신개헌에 못지 않았다.

  이러한 수십년에 걸친 헌법 개악사(改惡史)는 우리 국민들에게 일종의 ‘개헌 콤플렉스’를 형성시켰다. 87년 이후 십년이상의 민주화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콤플렉스는 아직 근원적으로 치유되지 않고 있으며, “개헌은 곧 정치적 음모”라는 거의 조건반사적인 반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은 수호의 대상일 뿐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며, 부당한 개헌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정당한 개헌요구를 통해 자신들의 주권을 능동적으로 확장시키는 것 또한 주권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물론 헌법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에 잦은 개헌은 국가의 민주적 정통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그러나 헌법은 영원한 진리의 체계가 아니라 국민주권의 시대적 표현이며, 항상 시대변화에 따라 진화해 나가야 하는 개방적 규범체계일 따름이다. 여기에 개혁으로서의 개헌의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2.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제도개혁

 


  헌팅턴은 70년대 중반이후 전세계를 휩쓴 ‘제3의 민주화물결’(the third wave of democracy)을 ‘위로부터의 민주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그리고 ‘타협에 의한 민주화’로 유형화한 바 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과정은 바로 이 ‘타협에 의한 민주화’의 전형이었다.

  한국 시민사회는 6월항쟁을 통해 자신의 거대한 힘을 폭발시키면서 민주화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힘은 권위주의정치세력의 청산을 동반하는 정치사회의 빅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민주화의 결실을 제도화하는 개헌과정(87년 제9차 개헌)은 시민사회와 개혁적 정치세력 간의 민주주의연대가 아니라 권위주의정치세력을 포함한 여야 제도정치권의 타협에 의해 주도되었다.

  물론 권위주의가 오랫동안 뿌리내렸던 곳에서 민주주의가 평화적으로 착근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민주주의세력과 권위주의세력간의 타협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타협에 의한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의 흔적을 남긴다”. 제9차 개헌의 산물인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한국 대통령제를 온전한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의 유산과 민주화의 결실이 혼합된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의 과도기적 대통령제로 한계지어 버렸던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는 세 차례에 걸친 평화적 정권교체와 특히 97년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함으로써, 10여년에 걸친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 to the democracy)을 마무리짓고 본격적인 ‘민주주의의 공고화’(consolidation of democracy) 단계로 진입했다. 한국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권위주의로의 역전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안정적 작동을 보장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마련하는 것이다. 요컨대 제도개혁은 정치인교체와 더불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정치의 양대 개혁과제이다.

  한국정치가 대면하고 있는 제도개혁의 과제는 정당민주화와 의회중심정치의 착근, 선거제도의 선진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권력구조의 민주화로 압축된다. 첫째 정당민주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상의하달 일변도의 의사결정구조가 다원화되어 ‘아래로부터 위로’(bottom-up), 그리고 좌우 수평적 의사소통구조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계파보스 중심의 폐쇄적인 공천제도가 개방되어 경쟁이 살아숨쉬는 자유공천시장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공천제도의 민주화는 국회의원 개개인에 대한 정당구속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의회중심정치를 착근시키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의회중심정치를 위해서는 또한 국회의장의 중립성과 권한을 강화하여 여야간의 당리당략적 대립이 의회운영과정에 투영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행 국회의원 선거법은 엄격한 사전선거운동 규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의정활동 명목으로 사전선거운동을 벌일 수 있는 현역의원과 그렇지 못한 초선의원간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는 개혁적 초선의원들의 의회진출을 가로막아 우리 정치판을 보수화하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규정의 대폭적인 완화가 요구된다. 또한 현행 1인1표 소선거구 상대다수제는 거대정당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여 개혁적 군소정당의 원내진입을 제도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소선거구 1인1표제는 군소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라도 사표방지를 위해 거대정당에 투표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우리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이러한 투표왜곡현상을 시정하기 위해 비례대표의석을 할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지역구 5석이상 혹은 전국득표율 5%이상을 획득한 정당에게만 할당되기 때문에 군소정당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군소정당들의 원내진입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제도화시키고 거대정당간의 대치를 완충하기 위해서라도 얼마전 검토된 바 있는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재도입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도개혁의 본령은 현 대통령제의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탈각시키고 온전한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권력구조의 민주화에 있으며, 이는 개헌을 필요로 한다. 현행 5년단임제는 87년 제9차 개헌 당시 집권 민정당의 6년단임제안과 통일민주당의 4년중임제안 간의 절충이었으며, 대선을 앞두고 ‘1노 3김’ 모두가 집권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낙선할 경우 재도전이 수월하도록 만든 즉흥적 흥정의 산물이었다.

 


3. ‘대통령제 민주주의’와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

 


  전세계적으로 ‘대통령제 민주주의’(presidential democracy)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21개국 정도이며, 그나마 온전한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미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제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행 5년단임 대통령제의 단점에 대한 논의들은 주로 대통령의 민주적 책임성과 국정운영의 안정성 문제로 귀결된다. 첫째 민주적 책임성의 문제는 무엇보다 ‘과반수미만 대통령’이라는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원래 대통령제는 행정부의 수반이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의원내각제에 비해 민주적 책임성이 높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7년 이후 우리나라의 대선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후보자가 3명 이상인 경우 50%미만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민주적 리더쉽을 결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결선투표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이다. 즉 과반수 이상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에 대해 결선투표를 실시함으로써 과반수미만 대통령의 등장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결선투표는 지역주의투표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부통령제와 같은 또 다른 제도적 보완책과 함께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민주적 책임성의 또 다른 문제는 국무총리의 위상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순수대통령제가 아니라 대통령제에 국무총리라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결합시킨 혼합대통령제이다. 다만 총리인선이 국회의 동의를 거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대통령제로 분류되고 있을 따름이다. 만일 총리가 국회에서 선출된다면, 프랑스처럼 이원집정부 준대통령제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 국무총리제의 문제점은 바로 국민의 직접선거도 국회에서의 간접선거도 아닌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선출된다는데 있다. 즉 행정권 행사에 있어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무총리를 대통령의 방탄조끼로 내세움으로써 ‘대통령 무책임제’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프랑스처럼 총리를 의회에서 선출하는 이원집정부 준대통령제로 가든지, 아니면 국무총리제를 없애고 여타 대통령제 나라들처럼 정부통령제로 가는 방식이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총리든 부통령이든 실질적인 권력을 분배받음으로써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된 ‘과대권력 집중국가’이며, 이로 인해 청와대중심정치가 의회정치의 착근을 방해하고 있다. 정부통령제의 도입은 이러한 과도한 권력집중을 분산시키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국정운영의 안정성 문제는 5년 단임제의 폐해이다. 대통령제는 원래 행정부수반의 임기를 헌법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내각수반이 자주 교체되는 의원내각제에 비해 국정운영의 안정성이 높은 제도이다. 그러나 현행 5년 단임제 하에서는 대통령의 조기레임덕을 피할 수 없으며, 국정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은 분열된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정치적 통합(political integration), 경제적 업적(economic performance), 그리고 남북통합(national reunion)을 동시에 달성해야할 막중한 과제를 부여받고 있으며, 이러한 과제들은 올바른 리더쉽에 의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추진을 요구한다. 예컨대, 박정희대통령이 이룩한 경제기적은 1 8 년 철권통치기간 동안의 일관된 경제개발정책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으며, 현재 미국의 장기호황 역시 클린턴대통령의 8년 연임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의 민감성을 감안한다면, 정권교체에 따른 이질적 대북정책의 교차는 곧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5년 단임제는 대통령직에 부적격한 자에게는 너무 긴 기간이지만 대통령직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자에게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대통령제 신생민주주의 나라들 중에서 대통령의 중임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필리핀과 멕시코 등 대부분 권위주의로의 역전가능성이 높은 나라들이며,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중임을 금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단임제는 정권재창출을 희구하는 정당정치의 속성상 중립적 국정운영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정치적 줄서기를 촉진시키며 단기간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는 과도한 업적주의를 부추킨다. 또한 의회와 행정부가 융합되는 의원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제 하에서 의회와 행정부의 교착가능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는 하지만, 5년주기의 대통령선거와 4년주기의 국회의원 선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의회와 행정부의 교착가능성은 증대한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현행 5년단임제를 4년중임제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현행 과도기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그런데 현재 전문가들조차도 4년중임제 개헌에 대해서는 모두가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정부통령제 개헌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통령제 개헌이 요구되는 이유는 앞서 지적한 민주적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성별간 정치적 격차를 줄이고 한국의 ‘참석민주주의’를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정부통령제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투표성향을 완화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차기대선에서 영남출신 대통령후보와 호남출신 부통령후보 그리고 호남출신 대통령후보와 영남출신 부통령후보가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영호남간 교차투표가 발생할 가능성은 현재보다 상당히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가 문제로 되는 것은 지역주민간의 정서적 갈등 때문이 아니라, 지역주의 투표구도가 그대로 정당체계에 투영되어 여야간 타협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통령제 개헌은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완화시켜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계기임에 틀림없다. 미국대선에서도 같은 지역출신의 대통령후보와 부통령후보가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선거제도를 통해 지역간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둘째 정부통령제는 계층간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기제이기도 하다. 물론 계급투표가 일반화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이 투표결정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사회의 계층간 갈등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거제도가 계층간 균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계층간 갈등은 선거를 통해 제도화되는 것이 아니라 계층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충돌로 나타나게 되며, 그만큼 사회적 불안정의 요소가 증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혁의 과제는 주로 군소정당의 원내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차원에서 논의되겠지만, 정부통령제 역시 이러한 계층간 갈등 해결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정부통령제는 아니지만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과 총리가 각기 우파와 좌파를 대변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셋째 정부통령제는 성별간, 세대간 정치적 격차와 정치무관심을 완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제이다. 예컨대, 5-60대 대통령후보와 3-40대 부통령후보가 러닝메이트로 나오거나 남성대통령후보와 여성부통령후보 혹은 여성대통령후보와 남성부통령후보가 러닝메이트로 나올 경우 여성층과 청년층의 정치적 관심도와 선거참여율은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60%가 2-30대 젊은 유권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여성과 청년층은 아직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지도자를 가져본 경험이 없으며, 이것이 이들의 정치무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 전세계 정치무대에서 3-40대 청장년지도자와 여성지도자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추세이며, 21세기 우리의 민족시간은 이러한 세계의 정치시간을 따라잡아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 여성의 연성정치(soft politics)로 남성중심의 경성정치(hard politics)가 낳는 폐해를 시정하고 한국정치를 젊게 하지 않는 이상 21세기 한국정치의 희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통령제 도입시 현행 40세로 되어 있는 입후보 자격연령 하한선을 38세정도로 완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민주주의나라들의 사례를 참조한다면, 연령제한을 35세정도로까지 낮춰야 하겠지만, 한국 초재선들의 현 정치연령을 감안할 경우에 38세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정부통령 입후보 자격연령이 35세로 되어 있고, 영국은 아예 수상의 입후보 자격연령기준을 두고있지 않다. 예컨대, 영국 보수당의 윌리엄 헤이그는 36세에 당수가 되었고, 자유민주당의 찰스 케네디는 39세에 당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통령제 개헌이 이러한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성별간 격차를 완화시키는 정도는 대통령과 부통령간 권력배분의 수준에 달려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통령에게 보다 많은 권력을 할당할수록 그의 지역적, 계층적, 세대적, 성적 대표성이 증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런 권력도 주어지지 않는 형식적인 부통령제를 도입하게 된다면, “정계개편을 위한 개헌”이라는 비판속에서 현재의 지역주의적 투표성향과 정치무관심증이 오히려 증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 유고시 권력을 승계하는 수준의 상징적 부통령제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부통령제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필리핀의 경우 부통령은 행정부의 장관직을 겸직한다. 이번에 에스트라다 후임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아로요 여사는 부통령 재직당시 사회복지부 장관직을 겸임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경우 부통령은 상원의장직을 겸직하며, 특히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차기 대권후보 1순위로 인정받는다.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소위 ‘리버만효과’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미국 부통령의 실질적 권력 공유에 기반한 것이다.

 


4. 反개헌론과 이회창총재의 정치적 이해타산

 


  전문가그룹내에서 개헌론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권내에서도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론에 대한 동의가 암묵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국내 모 월간지의 정치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당의원의 84%, 야당의원의 53%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에 찬성하고 있으며, 이중 적극적인 개헌의지를 표명한 의원들도 여야 각기 51%와 12%로 나타났다. 따라서 개헌논의가 조만간 공론화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특히 이는 개헌론의 주창자들이 주로 여야의 잠재적 대권주자들이라는 점에서도 증명되는데, 민주당의 김중권대표와 이인제, 한화갑 최고위원, 한나라당의 김덕룡, 박근혜 부총재, 그리고 대권주자는 아니지만 자민련의 김종호 대행이 그들이다.

  반면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개헌반대를 주장한 사람은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무소속 정몽준의원 두 사람뿐이다. 이들의 反개헌론 또는 新호헌론의 논지는 “경제가 어렵고 국민이 반대하는데 개헌논쟁으로 국론을 분열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현재 개헌론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정계개편 내지는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4년중임제 개헌론의 불씨를 당긴 사람이 다름아닌 이회창총재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이총재는 작년 4월 18일 언론사 인터뷰에서 “현행 대통령 단임제는 임기가 절반만 지나도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중임제 개헌을 논의해야 할 상당한 근거가 있다”며 4년중임제 개헌론을 제기했다. 더욱이 그는 “중임제 개헌이 가능하려면 김대중대통령이 추진주체가 돼야 할 것”이라며 김대중대통령의 임기내 개헌을 주장했다.

  그간 일체의 개헌논의 자체를 반대했던 이총재가 자칫 내각제개헌론을 재공론화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개헌론을 개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예비대통령’으로서 레임덕 방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이총재의 발언이 4.13 총선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즉 4.13 총선결과 한나라당의 동의 없이는 내각제개헌이 불가능한 의석분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각제개헌은 물건너 갔으며, 반대로 대통령제 개헌론을 통해 내각제개헌을 고리로 했던 DJP공조를 균열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내 ‘중임제’ 개헌을 주장한 것은 현재 구도하에서는 자신의 대권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4년중임제 개헌론은 대다수 정치인들이 소신인 만큼, 이 총재 자신의 정치적 소신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이총재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보다는 정치적 이해타산에 압도되고 있다는데 있다. 이총재가 불씨를 당긴 이후 박근혜, 김덕룡 부총재를 비롯해서 여야의 잠재적 대권후보들로부터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론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그러자 이총재는 말을 바꿔 곧 호헌론으로 돌아섰는데, 문제는 정부통령제 개헌만이 아니라 자신이 주장한 4년중임제 개헌까지 싸잡아 개헌자체를 반대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올해 1월 1일 이총재는 “여권이 대통령 중임제와 정부통령제라는 개헌론으로 야당을 분열시키려 한다”면서 “‘현행 대통령제’를 기필코 수호하겠다”며 호헌의지를 다졌다. 4년중임제가 이총재의 정치적 소신일지는 모르지만 개헌론은 자신의 영남기반을 잠식할 정부통령제 개헌론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모든 개헌논의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총재는 개헌론이 “모종의 정치적 의도”하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총재 자신의 호헌론 역시 정치적 이해타산의 산물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실체없는 음모론으로 개헌논의를 가로막고 국민의 ‘개헌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할 것을 권유한다. 정치인이 정치적 의도 없이 개헌론을 제기했을리는 만무하다. 87년 야당의 대통령직선제 개헌론이 오직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만 제기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개헌론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게재되어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시대가 개헌을 요구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지역주의의 완화,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이 시대적 요구가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87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호헌은 단지 시대착오일 뿐이다. 더욱이 87년 당시에는 여당과 야당이 호헌과 개헌으로 뚜렷이 구분되었지만, 지금은 여야 3당이 ‘3구동성’으로 개헌을 주장하고 있으며, 오직 이총재 한 사람만이 호헌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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